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틴 학살 (문단 편집) ===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 [[소련]]의 대혼란기인 1989년과 1990년에 [[소련]] 학자들이 카틴 학살 사건과 관련된 문서[* 이 문서 중에는 1940년 3월 5일 베리야가 스탈린에 상신한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의 수용소에 수감된 폴란드인 중 2만 5,700명을 처형하자는 내용의 문서와, 그리고 알렉산드르 셸레핀이 흐루쇼프에게 보낸 메모 등이 포함되었다. 특히 3월 5일자 문서는 스탈린을 비롯한 소련의 주요 인물들이 직접 서명한 상태여서 카틴 학살을 소련 정부가 저질렀다는 결정적 근거가 되었다.]를 찾아냈는데 결국 1990년 4월 13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NKVD]]에 의한 포로 학살을 공식 시인하였다. 1990년부터 2004년까지 소련 검찰과 러시아 검찰[* 1991년에 소련이 붕괴되었으므로 수사를 러시아 검찰이 이어받았다.]이 벌인 수사에서도 소련 정부가 카틴 학살을 벌인 사실이 밝혀졌으며, 특히 [[소련 붕괴]] 후인 1992년 학살 명령이 담긴 [[이오시프 스탈린|스탈린]]과 [[니키타 흐루쇼프|흐루쇼프]] 등의 서명이 들어간 다량의 관련 문서들이 기밀 해제되었다. 2010년 11월에는 러시아 연방 [[국가두마]]에서 스탈린을 비롯한 소련의 관리들이 학살을 명령했다는 결의안을 채택하여 학살에 대한 소련의 책임을 재확인했다. 2011년 러시아 정부는 카틴 학살과 관련된 사건 파일 11권을 폴란드에게 제공했다.[* 여기에는 유죄 판결 통지서와 폴란드 수감자들이 살해된 매장지에 대한 설명 등이 포함되었다.[[https://www.rt.com/news/katyn-massacre-documents-russia-poland/|#]]] 그리고 2012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미국]] 쪽 문서의 기밀 해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5809092|지시]]를 내렸다. 따라서 카틴 학살은 분명히 소련 정부가 벌인 학살이란 사실이 명백해졌다.[* 고르바초프와 옐친 같은 반스탈린 정권과 서방 학계만 학살 사실을 인정한다는 부정주의적인 주장이 있는데, 국가두마에서 저 결의안을 채택한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의 동업자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2010년 11월의 일이다. 그리고 메드베데프는 사실상 푸틴의 꼭두각시였으니, 그런 시절에 국가두마에서 소련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결의안이 채택되었다는 것은 서방이고 반서방이고, 반스탈린이고 친스탈린이고 할 것 없이 소련이 카틴 학살을 벌였다는 것 자체는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러시아]] 정부는 카틴 숲 학살에 대해 ''''이는 NKVD에 의해 자행된 일이지만 이를 [[라브렌티 베리야]] 등 NKVD 쪽이 미리 계획하고 제안, 실행한 점을 들어 현재 [[러시아]]에 국가적인 책임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어 아직까지 폴란드와 러시아 간 외교적 마찰의 원인이 되고 있다. 물론 러시아가 소련의 계승국이고 당시 소련의 통치자가 [[이오시프 스탈린]]이었으며 그가 학살의 최고 책임자임을 고려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당장 오늘날 러시아가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자리를 유지하고 핵 자산을 물려받은 것도 소련의 계승국이기 때문이다. 구 소련과 현 러시아의 국체가 다르니 현 러시아의 책임이 없다는 말은 소련의 권리만 승계받고 싶지 책임 따윈 알 바 아니라는 [[체리피킹]]이나 다름없고, 또한 나치 독일, 일본 제국과 국체가 다른 현 독일, 일본도 과거의 악행에 대해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 [[폴란드 침공]]과 카틴 학살, [[겨울전쟁]], [[발트 3국 점령]], 전쟁포로 학살, 동유럽 강제 공산화, [[1956년 헝가리 혁명]]과 [[프라하의 봄]] 유혈 진압,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등 구 소련이 저지른 만행은 당연히 현 러시아 정부의 책임이다.] [[폴란드]]가 [[Missile Defense|MD]]에 가입하네 마네 하는 입장을 보이자 결국 [[러시아]]에서도 [[폴란드]]를 달래기 위해 [[블라디미르 푸틴]]이 카틴 학살 추모에 참석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후술하는 영화 '카틴'을 방송사들마다 방영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2010년 카틴 학살 70주년을 추모하기 위해 스몰렌스크로 가던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당시 대통령 및 각료들이 탄 [[Tu-154]] 여객기가 [[스몰렌스크]] 공항 근방에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이 사건이 뉴스에 나오고 나서야 카틴 학살이라는 역사적 사건 자체를 처음 안 일반인들도 있었다.] 조종사 과실[* 안개가 심하여 관제탑에서는 착륙이 어렵다고 안내하였으나 착륙을 강행하였다. 거기다 고도 경보가 울리자 고도계를 수동으로 더 높게 설정하여 경보를 꺼버리기까지 했으니 사고가 안 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및 공항 시설 미비[* [[계기착륙장치]] 미비.]로 인한 관제 실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애초에 착륙 허가를 내 주지 말았어야 한다는 조사결과가 있다,]가 원인이지만 [[폴란드]]의 카친스키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손을 썼다는 [[음모론]]도 떠돌았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폴란드]]에 [[반러]] 감정이 확산될까 봐 가진 능력을 총동원해 사고를 수습했다. 원인이 좀 말이 되지 않았는지 폴란드 측에서 재조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블랙박스가 복원되자 카친스키 대통령과 폴란드 수뇌부의 자업자득에 가까운 상황이었다는 게 밝혀졌는데 우선 기장이 착륙할 상황이 아니니 회항해야겠다고 요청하자 폴란드 공군사령관 안제이 브와시크가 직접 조종실까지 들어와서는 조종사를 갈궈서 착륙을 강행할 것을 요구했으며 그 이전에도 카친스키 대통령은 조지아를 방문할 때도 회항하려는 조종사에게 착륙을 요구했으나 안전상의 이유로 조종사가 착륙을 거부해 대체공항을 찾아가게 되자 명령불복종 혐의로 조종사를 검찰 조사에 넘겨 버린 전적까지 있었기에 조종사가 러시아 측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짙은 안개 속에서 무리하게 착륙을 시도하다가 추락해 몰살당했다는 게 밝혀졌다. 결국 [[권위주의]] 때문에 메뉴얼을 지키지 않아서 터진 인재였던 것. 자세한 건 [[폴란드 공군 Tu-154 추락사고]] 문서 참조. 문제는 잊혀질만한 듯 싶더니 2022년부터 폴란드 측에서 러시아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 사건을 다룬 2007년작 [[폴란드]] 영화 '카틴(Katyn)'도 있다. 2010년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한 [[폴란드]]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 부부가 후원했다고 한다. 비행기 추락 사고 이후 러시아측은 애도를 표하고 애도 기간 동안 이 영화를 황금시간대에 TV를 통하여 방영하였다. 참고로 감독은 ''''재와 다이아몬드''''의 감독인 [[안제이 바이다]]이며 감독의 아버지인 야쿠프 바이다(Jakub Wajda)가 카틴 학살 때 피살됐다고 한다. [[한국어]] [[더빙]]도 되어 KBS [[명화극장]]으로 방영한 바 있다. 만화 [[고르고13]]에도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한 에피소드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